송연조 retweeted
김염(金焰, Jin Yan)은 1930대 한국인 남성 평균 신장이 170cm가 한참 안 되던 시절임에도 180cm가 넘는 장신과 수려한 외모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배우.
그의 아버지 김필순은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그는 안창호, 양기탁, 김구 등이 주도한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하여 자신의 집을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회의 장소로 제공했고, 안창호와 김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후방에서 전력으로 도왔다. 하지만 신민회를 돕던 중 일제 밀정에게 독살당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김염은 배우로 크게 성공한 후에도 가문으로부터 대물림된 애국심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항일 영화에 적극적으로 출연하고 독립운동을 남몰래 지원하며, 아버지의 못다 한 뜻을 이어나갔다.
영화 "대로"(1934)의 오프닝 곡 〈개로선봉〉
현재 중국 국가를 작곡한 천재 음악가 녜얼(聂耳)이 곡을 쓰고, 주연 배우 김염이 직접 불렀다.
중국의 ‘영화 황제’는 서울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의 아들이었다.
김염(金焰), 본명은 김덕린. 1910년 한성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김필순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의사이자 신민회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망명했고, 아들은 중국에서 자랐다.
1927년 상하이로 간 김염은 영화배우의 길을 택했다. 단역을 거쳐 1930년 《야초한화》에서 완령옥과 함께 주연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잘생긴 외모와 자연스러운 연기는 특히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1930년대 상하이의 영화신문 《전성일보》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그는 남자 배우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영화 황제’는 관객들이 뽑은 호칭이었다.
그는 《야장미》와 《대로》 등 항일 의식을 담은 영화에 출연했다. 화면 밖에서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바쁜 촬영 일정 속에서 난징의 김구를 찾아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일본군이 상하이를 점령한 뒤에는 일본측을 위한 영화 출연을 거부했다.
중국 관객들의 사랑을 받던 배우는, 자신의 고향을 지배하고 중국을 침략한 나라의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버지는 의사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아들은 배우가 되어 다른 나라의 관객들 앞에서 항일의 뜻을 이어갔다.
#김염 #한중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