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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레시피로 하셈 ㄹㅇ 맛읶어서 키스하고잇음
육회삿음 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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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비밀유지 의무가 풀렸습니다 국립공주대학교 박물관에 7세기 백제 공산성출토 갑주를 제작 납품에 기여했습니다 보병은 철갑옷, 기병은 옻칠피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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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컷당하지 않은 실용적 가르침은 주로 외할머니한테서 왔는데 1. 피난짐 식량으로는 콩가루를 싸라. 쌀/통조림/라면/초코바 그딴거 다 필요없고 콩가루.(물이나 불 없어도 섭취가능하고 포만감있고 단백질도 좀 있어서 굶어죽을 확률이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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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오류가 있습니다. 1. 간무 천황(桓武天皇)의 어머니는 백제인이 아닙니다. 간무천황의 어머니는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로, 당시 일본의 황실은 그녀를 백제 제25대 국왕 무령왕(武寧王)의 후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녀의 먼 조상 중에 백제의 국왕이 있다는 의미이지, 다카노노 니이가사 본인은 백제인이 아닌 일본인입니다. 애초에 백제가 멸망한 지 100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다만, 간무천황은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당시 일본에 있던 실제 백제 왕족('百済王氏')을 공식적인 외척으로 선언하고, 백제 왕족의 조상이자 고구려(高句麗)의 건국자 주몽(朱蒙)의 태양 신화를 인용해 다카노노 니이가사의 시호(諡號)에 '日之子' 등을 넣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인 의미부여와, 실제 혈통은 구분해야합니다. 이 둘을 헷갈리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2. 무령왕(武寧王)은 난민이 아닙니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고, 무령왕은 523년에 죽었습니다.🤣 3. 동아시아에서 모계 혈통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니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자식도 외국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백제 역시, 일본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왕비가 있습니다. 꽤 유력합니다. 백제 제18대 국왕 전지왕(腆支王)의 왕비입니다. 만약 그녀가 일본인이 맞다면, 이후의 백제 왕족(즉 무령왕까지) 일본계 혈통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제가 일본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정통성은 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모계 혈통은 같은 부계 혈통을 가진 자들 간의 2차적인 서열을 정할 뿐입니다. 오랫동안 일본 황실의 외척이 되었던 후지와라 섭관가(藤原摂関家)는 모두 후지와라노 후유쓰구(藤原冬嗣, 775~826)의 직계 후손들이고, 그 후유쓰구의 어머니는 또 다른 백제 왕족의 후손 구다라노 나가쓰구(百済永継)입니다. 9세기 이후 일본 황실과 후지와라 섭관가는 계속 통혼을 했으므로, 백제왕족 혈통의 일본황실로의 유입은 간무천황 때 한 번만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후손들이 '백제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카노노 니이가사(高野新笠), 구다라노 나가쓰구(百済永継), 구다라노코니키시(百済王氏) 가문 등은 모두, 당대 일본 천황을 섬겼던 일본의 귀족일이자 일본인들이었을 뿐입니다. 프랑스인이 동아시아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만,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LA MÈRE SECRÈTE DE L'EMPEREUR DU JAPON ÉTAIT CORÉENNE Au Japon, on vous dit que l'Empereur descend de la déesse du soleil Amaterasu. Lignée pure. Divine. 100% japonaise depuis 2600 ans. C'est faux. Et c'est l'Empereur lui-même qui l'a avoué. En 2001, l'Empereur Akihito lâche une bombe devant toutes les caméras du Japon : "La mère de l'Empereur Kanmu était de la lignée du Roi Muryeong de Baekje, en Corée." Qui est Kanmu ? Ce n'est pas n'importe qui. C'est l'empereur qui a fondé KYOTO en 794. La ville la plus sacrée du Japon. Le centre du monde japonais pendant 1000 ans. Sa mère s'appelait Takano no Niigasa. Et son clan, les Yamato no Fuhito, étaient des immigrés coréens du royaume de Baekje. Traduction: Le fondateur de Kyoto avait une mère coréenne. Donc tous les empereurs après lui ont du sang coréen. Mais ce n'est pas tout. Le Roi Muryeong de Baekje dont elle descend, c'était un roi réfugié. Quand son royaume de Baekje s'est fait écraser par la Chine et Silla en 660, ses princes ont fui... au Japon. Ils ont apporté l'écriture chinoise, le bouddhisme, l'architecture des temples, la soie, et ont créé l'état japonais. Sans les réfugiés coréens de Baekje, il n'y a pas de Japon. Alors pourquoi on vous cache ça à l'école japonaise ? Parce que le mythe de la pureté est plus fort que l'ADN. Les mêmes Japonais qui aujourd'hui insultent les Coréens sur X en disant "Rentrez chez vous, le Japon est pur" descendent eux-mêmes de ces Coréens qu'ils insultent. L'Empereur a dit la vérité. Personne n'a voulu l'entendre. Le Japon n'est pas né du soleil. Il est né d'un bateau de réfugiés coré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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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출동한다 1.고구려 군인 2.신라 군인 3,4 조선 군인 전근대 한국 군인 시리즈
군인 재현한 것들 모음집 60년대 군인 사진이 하나 있고 재현이 아니라 진짜 군인 같은 사진이 있다면 이상한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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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朝鮮)'이라는 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조선'은 주로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1392~1897)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단군왕검이 세운 한민족 최초의 국가 '조선'은 따로 '고조선(古朝鮮)'으로 구분을 합니다. 반면, 이번에 소개해드릴 조선의 의미는 바로 평양 지역의 지명입니다. 최소 7세기 고구려와 중국에서는, '조선(朝鮮)'은 확실히 고구려의 수도 지역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가 여럿 보입니다. 중국의 역사서 《수서》에서는, 612년 수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할 때 각 군에 진격 방면의 이름을 붙인 기록이 있습니다. "요동도(遼東道)", "현도도(玄菟道)" "부여도(扶餘道)"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 좌10군에 붙은 이름이 바로 "조선도(朝鮮道)"입니다. 바로 여기서 이 '조선'이 평양 지역을 의미합니다. 더 결정적인 자료도 있습니다. 연개소문의 아들이자, 연개소문이 죽자 내분을 일으켜 당나라에 투항했던 인물 연남산(淵男産, 639~701)의 묘지명이 대표적입니다. db.history.go.kr/ancient/lev… 연남산의 묘지명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은 남산(男産)이고, 요동(遼東) 조선인(朝鮮人)이다." 여기서 조선은 고조선이 아닌, 바로 위에서 설명하는 평양 지역의 지명으로서의 조선입니다. 즉 조선인 = 평양(근처)인 이렇게 사용된 것이죠. 그 뒤에 朝鮮이 또 나옵니다. "크고 신령스러운 바다에 온갖 냇물이 모이고, 동명의 후예들이 진실로 조선을 이루었구나" 여기서 동명은 당연 고구려 시조 주몽(동명성왕)을 의미합니다. 즉, 동명의 후예들(=고구려의 지배층)이 조선(=평양)에 모여 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할 것은, 고구려가 공식적으로 고조선의 계승을 표방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고구려에서 사용된 '조선인'은 오늘날 '서울사람'처럼 수도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의미를 떠나서, 연개소문의 자손들이 스스로 '조선인(朝鮮人)'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은 오늘날에 보면 꽤 묘한 느낌이 들게 하죠. 이후에는 한반도의 여러 지역들을 가리키는 미칭으로 변화합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건의 아버지 왕륭이 궁예에게 자신의 아들을 크게 써줄 것을 부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대왕(궁예)께서 만약 조선(朝鮮)·숙신(肅愼)·변한(卞韓)의 땅에서 왕이 되고자 하신다면, 먼저 송악에 성을 쌓고 저의 장남(왕건)을 그 성주로 삼는 것만 한 게 없습니다.” db.history.go.kr/KOREA/item/… 여기서의 조선은 7세기처럼 평양 부근이라기보다는, 한반도의 일부를 나누어서 부르는 미칭으로 추정됩니다. 숙신은 북쪽, 변한은 남쪽, 조선은 대략 그 중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조선, 숙신, 변한을 고루 얻는다 = 한반도를 통일한다 이러한 의미의 문학적인 표현인 셈입니다. 조선의 의미 변화를 아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죠. 처음: 단군조선, 위만조선 등 고대 왕조의 이름 7세기쯤: 평양 일대 10세기쯤: 한반도의 중간부분 그리고 14세기 이후~오늘: 이성계의 조선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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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7년 전, 한반도 남부 전라도에 왜구가 쳐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이걸 을묘왜변이라고 하는데요. 이 왜구들은 초반에는 조선군에게 큰 피해를 줬지만 결국 기병 전술에 밀렸는데, 특히 제주도에서는 조선군 74명에게 왜구 1천여 명이 패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朝鮮出兵、こう言っては不謹慎だけど日本の武士と朝鮮軍や明軍、その配下の蒙古騎兵や女真が戦っていて異種格闘技戦的な面白さはある 明・朝鮮側が「鉄砲やべー」「接近戦(刀)つおい」日本側が「騎射上手スンギ」「(騎兵の)馬も乗ってる人もめっちゃデカい」等と評価しあっているのも興味深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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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임진왜란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단순히 '침략당했으니까' 라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몽골도 고려를 침공하여 큰 피해를 입혔지만 현대의 몽골에 대해서 분노하는 한국인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지속성입니다.
韓国人はどれだけ日本の歴史や文化をキャンセルしようとすれば気が済むんだ?秀吉は日本では偉人である。日本で行われる大会なのだから日本流の日本的な視点でパフォーマンスをしようとするのは当たり前だ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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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매미가 사라지고 귀뚜라미가 우니깨 정말 가을같고나... 애두라 조선의 왕이 쓰던 모자이찌 그걸 익선관이라고해. 만원짜리보면 세종대왕님 모자이쨔녀. 이거. 저 익선관 뒷모습봐봐. 뭐같어. 그려 매미여. 절대지존인 왕머리에 쓰는 관에 매미를 저러케 붙여논 이유가 모냐.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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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클 타투이스트가 청소년 타투를 반대하는 이유 10대 → 패션·외모·취향에 대한 미감이 계속 변하는 시기 → 지금 멋있다고 생각한 것도 몇 년 뒤엔 ‘흑역사’가 될 수 있음 20대 초반 → 사회 경험을 쌓으며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자리 잡는 과정 → 자신만의 확실한 미감 역시 아직 만들어지는 시기 타투이스트가 말하는 핵심 → 평생 남는 타투를 미감이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결정하는 건 위험 → 청소년에게 타투를 해주는 업계 역시 신중하게 볼 필요가 있음 결론 → “제발 하지 말고, 최소 20살은 넘겨라.” → 사회 경험을 쌓고 자기만의 미감이 생긴 뒤 해도 늦지 않다는 것. 평생 남는 타투일수록 ‘지금의 나’보다 ‘미래의 나’를 생각해야 한다는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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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야기. 어제 오늘 더웠으니까 하는 말. 더울 때 먹는 건 아무래도 빙수(氷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우리가 먹는 빙수는 얼음을 샥샥 갈아 그 위에 팥도 올리고 떡도 올리고 과일도 올리고 하여간 모든 걸 올려 먹는데. 정작 빙수라는 말에는 물 수(水)가 들어있는 거여요. 왜 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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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가 흥행 중인 김에 하나 더 써보자면 오디세우스가 만난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 그 모습은 완전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었을 수도 있음. 시칠리아를 비롯한 지중해 섬에서는 고대 왜소 코끼리 화석이 발견됨. 그런데 코끼리 두개골을 정면에서 보면 꽤 기묘함.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보다 훨씬 눈에 띄는 거대한 구멍 하나가 얼굴 정중앙에 뚫려 있음. 물론 눈구멍이 아님. 살아 있을 때 코가 연결되던 비강임. 하지만 코끼리를 본 적 없는 고대인이 동굴 속에서 이런 거대한 두개골을 발견했다면? “눈이 하나뿐인 거인이 살았던 게 아닐까?” 실제로 1914년 고생물학자 오테니오 아벨은 지중해의 고대 코끼리 화석이 키클롭스 신화의 기원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음. 증명된 정설은 아니지만 꽤 매력적인 가설임. 어쩌면 신화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만들어진 상상이 아니라, 고대인이 이해할 수 없었던 현실을 당시의 지식으로 해석한 기록이었을 수도 있음. 사진: sciencephotogallery
크리스토퍼 놀란이 ‘오디세이’에서 해양민족 (Sea Peoples) 설정을 어떻게 비틀었는지 알고 나면 진짜 재미있음. 기원전 1200년 무렵, 이집트, 히타이트, 미케네 같은 당대 최고 문명들이 수십 년 만에 싹 다 멸망한 ‘청동기 시대의 붕괴’가 발생함. 이때 이집트 기록에 끊임없이 등장하며 도시를 불태우고 문명을 밀어버린 정체불명의 집단이 바로 ‘해양민족’임. 역사학계에서도 단일 민족이 아니라 난민, 용병, 해적이 얽힌 대혼란의 결과로 보는데, 놀란은 여기에 미친 상상력을 하나 던짐. “그 바다의 약탈자 중 일부가, 사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떠돌던 그리스 영웅들이었다면?” 이게 왜 소름 돋냐면, 우리가 아는 오디세이아 원작 텍스트를 피해자 시점으로 시선을 살짝만 틀어보면 그대로 성립하기 때문임.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낯선 해안인 '이스마로스'에 상륙함. 그리고 자신들의 입으로 이렇게 말함. "우리는 그 도시를 약탈하고 남자들을 죽였다. 그리고 여자들과 보물을 나누어 가졌다." 그리스 병사들 입장에선 지친 몸을 이끌고 식량과 보물을 챙기는 '정당한 승리자'의 행동임. 하지만 아무 죄도 없이 갑자기 침략당한 마을 주민 입장에선? 그들은 그리스의 전쟁영웅이 아니라 갑자기 바다에서 검은 배를 타고 나타나 내 집을 불태우고, 가족을 살육하고, 재산을 털어가는 '괴물 같은 바다 사람들' 그 자체임. 트로이라는 거대한 제국이무너지면서 생긴 힘의 공백, 그리고 10년 전쟁으로 고향의 경제와 사회 시스템이 망가져 돌아갈 곳을 잃은 그리스 병사들. 이 패잔병들이 생존을 위해 바다를 떠돌며 또 다른 도시들을 짓밟는 해적이 되어버린 거임. 세계사를 뒤흔든 거대한 문명 파괴의 미스터리를, '승자의 영웅담' 뒤에 숨겨진 추잡하고 잔혹한 생존기로 뒤집어버린 창의적인 해석. '영웅'이라는 낭만을 찢어발기고 고대의 비극적인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선이라 영화 보다가 진짜 소름 돋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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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환도 칼집 잡아서 등 뒤로 올리고 반대쪽 손으로 뽑아서 휘리릭 꺼내는 거 개멋있는데 왜 사극에서 그렇게 안 하는지 궁금함
⋯⋯! 이건 몰랐는데! 룰북에서 조운한 무구 어떻게 그려야할지 깨닫게됨 음?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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