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乭石 (@soitbe) header
尹乭石 (@soitbe) profile picture

낮술애호가.

Joined May 2010
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Photo by 尹乭石 (@soitbe)
200년 전 일본의 한 영주는 20년 동안 눈송이를 연구했다. 그런데 그 기록이 패션 유행까지 바꿨다? 에도 시대 고가번의 영주 도이 도시쓰라는 눈 결정에 푹 빠져 있었음. 눈이 내리면 미리 차갑게 식힌 검은 천으로 눈송이를 받고, 핀셋으로 옮긴 뒤 입김에 녹지 않도록 조심하며 현미경으로 관찰했음. 그렇게 약 20년간 연구한 끝에 1832년 《설화도설》을 출판했고, 직접 관찰한 눈 결정 86종을 그림으로 남겼음. 그런데 이 과학 기록이 뜻밖에도 에도의 유행을 만들어냈음. 눈꽃 무늬가 다른 인기 서적에 소개되면서 기모노와 머리 장식, 칼 장식까지 퍼진 것. 눈송이를 연구하던 영주의 집념이 일본의 전통 디자인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신기함.
16
36
3
201
13,048
尹乭石 retweeted
Replying to @Kasumi10077
なおこんな感じの柄になった模様
2
19
944
尹乭石 retweeted
지금 MBC 스트레이트 틀면 이주민/외국인 노동자들이 산재 당해서 팔다리 잃고 산송장처럼 살아있기만하는데 산재 비용도 제대로 못 받고 제도적으로 고립된 이야기 나온다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하는 꼬라지가 이모양인데 이ㅈ명은 일주일 가까이 뭔 역차별 같은 씨발소리나 하는 거냐
30
39
549
尹乭石 retweeted
아트선재에서 열리고 있는 고이즈미 메지로의 첫 국내전에서 “증언의 천사들”이 충격적이었음(p) 작가는 일본군 참전자의 생전 증언집의 내용을 바탕으로 젊은 일본 배우들에게 외우게하고 도쿄 도심에서 낭송하게 한다, 그리고 실제 참전자이자 작가인 곤도 하지메의 인터뷰와 겹치게 한다
149
13
294
175,875
尹乭石 retweeted
아.. 언론이 왜 마라톤 문제 보도 안하나 했더니 죄다 마라톤 대회 개최하고 있구나.....게다가 몇 몇 대회는 서울시와 공동주최야. 조, 중, 동, 경향, 문화, 매경(MBN), 한경, SBS, KBS(코오롱), MBC (제주)
요즘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마라톤 대회로 인한 도로통제와 소음, 쓰레기 등으로 온갖 민폐가 발생하고 있는데. 정작 이런 문제점을 취재해서 보도해야할 언론사가 마라톤 대회 주최측이거나 스폰서 때문에 매우 소극적이다. 시 행정 역시 수익 때문에 일반 시민에게 모든 불편을 감수하라고 떠넘기는 식이고.
1
947
29
657
27,812
주당 노동시간. 1938년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 펼치면서 주당 44시간으로 제한했고, 2년 뒤인 1940년엔 주당 40시간으로 줄었다. 그로부터 9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대한민국은 52시간이 짧다고 난리다.
2
5
335
尹乭石 retweeted
이런 구원자의 정서로 정치인을 바라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 인물이 된다는 것에 대한 성취감, 지지자들의 존경, 국가기관의 인사, 행정, 예산 결정 및 집행 권력, 이걸로 개인의 주장과 사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힘. 그로 인한 보람 모두 개인이 얻은 이익임.
이재명이 그래서 뭘 얻었는데? 이게 진짜 중요한 질문임. 성남의료원 세우려고 시장직 했을때부터 지금까지 공공의 이익, 사람들 삶을 낫게하려는거 외에 이재명이 개인적으로 얻은 이익이 정말 뭐가 있음? 오죽하면 윤석열 잔당들이 털다털다 결국 물리적으로 제거하려 칼로 찌르기까지 했잖아
1
18
23
1,669
이주민은 일반적으로 거주국 국민보다 전체 사망률이 오히려 낮음 한국처럼 대부분 이주 전 건강검진을 통과한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 이주하기 때문에..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이 전세계적 패턴을 거꾸로 뒤집고 있다는 거임 심지어 우리나라는 이주 노동자 사망 원인을 제대로 기록하지도 않아서
1
35
1
15
1,021
보닷코. 유튜버들이 이거 먹고 얼굴 찌푸리면서 소금보다 짜다고 난리 치길래 궁금해서 먹어봤는데.. 이거 병조림 걍 개허접인디 럭키순살황석어젓새키. 요즘 나오는 반찬 젓갈보다야 좀 짠거지, 새우젓 황석어젓이 훨 짬. 그거 무쳐서 반찬으로 먹는 나라에서 이거 병조림 먹고 짜다고 유세는
8
13
2
75
19,551
尹乭石 retweeted
당신의 공정과 상식은 왜 사회적 약자들의 쥐꼬리만한 혜택에만 작동하고 우리사회의 불공정과 비상식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기득권의 거악에는 작동을 멈추는가? 공정으로 포장된 극우의제로 보수화된 청년층의 환심을 얻어 지지율 몇% 올려보겠다는 당신의 이 얄팍한 잔꾀!! 부끄러운줄 알라!!!
<호남에서 콩이면 영남에서도 콩이어야.> 누군가 강조했던 이 상식의 언어는, 진영 논리나 이념적 편향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Fact)'과 '공정한 원칙'이 언제나 반드시 우선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공동체의 공적인 일 특히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원칙과 사실은 어떤 집단, 어떤 정치적 유불리 앞에서도 그 무게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우리 공동체의 책무입니다. 정책이란 필요하면 유지하고, 잘못되면 고치고, 부족하면 채우며, 불필요해질 때는 없애면 됩니다. 그런데, 제도 운영과정에서 불합리와 제도적 맹점이 발견되어도, 오직 집단의 정체성을 잣대 삼아 무조건 비호하거나 기계적인 피해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콩을 콩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왜곡, '콩을 팥이라 우기는' 선동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교조적 태도는, 다문화가정을 동등한 대한민국 시민으로 건강하게 포용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오히려 훼손할 수 있습니다. 포용과 개방을 목표로 한 다문화정책은 다문화가정을 영원한 시혜와 면책의 성역으로 구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누리는 평범한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정한 영역의 부분적 불공정이나 행정적 사각지대를 '소수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방치한다면, 그 틈새는 극우적 혐오 선동과 극단적인 여론 분열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고 건강한 공론장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파제는, 맹목적인 도덕적 비호가 아니라 제도의 불합리한 요소를 투명하게 선제적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기존 복지 사회정책에 대한 '원칙과 사실에 입각한 시정'은 대한민국 복지의 지평을 넓히는 받침대 역할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멍 난 곳만 땜질식으로 메우는 전통적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삶을 빈틈없이 떠받치는 미래형 '사회안전매트'입니다. 복지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지제도가 불공정하게 악용되지 않고 상식적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는 '공감과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시민들은 흔쾌히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재정부담을 감수할 것입니다.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 일부에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문제가 있다면 시정하자고 하는 것은 다문화 가정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조치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우리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포용하고, 국민적 신뢰 속에서 보편 복지와 사회안전매트를 완성하기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용도에서든 콩은 콩이어야 하듯이, 어떤 경우에도 사실과 공정은 온전히 통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과 이성에 기반한 활발한 논쟁은 사회발전을 도울 뿐 아니라, 허구와 맹종에 기반한 선동과 혐오를 막는 최고의 예방약입니다. 열심히 토론합시다. 단 팩트와 이성에 기반해서..
19
2
44
1,783
예시2) "포용과 개방을 목표로 한 [여성] 정책은 [여성]을 영원한 시혜와 면책의 성역으로 구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누리는 평범한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 이건 윤석열이라기보다는 평범한 펨코남이 되네요 🤗
<호남에서 콩이면 영남에서도 콩이어야.> 누군가 강조했던 이 상식의 언어는, 진영 논리나 이념적 편향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Fact)'과 '공정한 원칙'이 언제나 반드시 우선해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공동체의 공적인 일 특히 정부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원칙과 사실은 어떤 집단, 어떤 정치적 유불리 앞에서도 그 무게가 달라져서는 안 됩니다. 다문화 가정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마땅히 지켜져야 할 우리 공동체의 책무입니다. 정책이란 필요하면 유지하고, 잘못되면 고치고, 부족하면 채우며, 불필요해질 때는 없애면 됩니다. 그런데, 제도 운영과정에서 불합리와 제도적 맹점이 발견되어도, 오직 집단의 정체성을 잣대 삼아 무조건 비호하거나 기계적인 피해주의로 일관하는 것은 '콩을 콩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왜곡, '콩을 팥이라 우기는' 선동을 낳을 수가 있습니다. 문제를 문제라고 말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교조적 태도는, 다문화가정을 동등한 대한민국 시민으로 건강하게 포용하려는 본래의 취지를 오히려 훼손할 수 있습니다. 포용과 개방을 목표로 한 다문화정책은 다문화가정을 영원한 시혜와 면책의 성역으로 구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 안에서 권리와 의무를 동등하게 누리는 평범한 구성원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특정한 영역의 부분적 불공정이나 행정적 사각지대를 '소수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방치한다면, 그 틈새는 극우적 혐오 선동과 극단적인 여론 분열의 손쉬운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고 건강한 공론장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파제는, 맹목적인 도덕적 비호가 아니라 제도의 불합리한 요소를 투명하게 선제적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기존 복지 사회정책에 대한 '원칙과 사실에 입각한 시정'은 대한민국 복지의 지평을 넓히는 받침대 역할을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구멍 난 곳만 땜질식으로 메우는 전통적 사회안전망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삶을 빈틈없이 떠받치는 미래형 '사회안전매트'입니다. 복지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지제도가 불공정하게 악용되지 않고 상식적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운영된다는 '공감과 신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시민들은 흔쾌히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재정부담을 감수할 것입니다.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 일부에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문제가 있다면 시정하자고 하는 것은 다문화 가정을 배제하거나 차별하는 조치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을 우리 사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포용하고, 국민적 신뢰 속에서 보편 복지와 사회안전매트를 완성하기 위한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용도에서든 콩은 콩이어야 하듯이, 어떤 경우에도 사실과 공정은 온전히 통용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과 이성에 기반한 활발한 논쟁은 사회발전을 도울 뿐 아니라, 허구와 맹종에 기반한 선동과 혐오를 막는 최고의 예방약입니다. 열심히 토론합시다. 단 팩트와 이성에 기반해서..
1
22
32
1,519
尹乭石 retweeted
오늘 방영되는 스트레이트 두 번째 꼭지가 하필 또 이주노동자들 실태임. 일해라 MBC 정신차려 MBC.. <전쟁 피해 왔다 다리 절단…손가락 네 개엔 600만 원> 일터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고도 제대로 된 치료와 보상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주노동자들의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스트레이트는 전남 영암의 비좁은 단칸방부터, 경남 김해 이슬람센터까지 전국 각지를 돌며 산업재해로 삶이 무너져 내린 이주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직접 만났다.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첫 출근 날 굴착기가 전복돼 다리를 잃은 뒤 치료비 마련에 고통받다 비자 만료로 추방 위기에 내몰렸거나, 기계에 절단된 손가락 4개를 두고 '하나당 150만 원'에 합의를 강요당한 이들. 또 손목뼈가 으스러졌지만 산재를 신청하자 일자리를 잃고 기숙사에서 쫓겨난 청년 노동자의 증언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산재를 인정받아도 치료비 등 그 이후의 고통은 오롯이 이주노동자들의 몫이었다. 5년째 뇌사 상태인 이주노동자가 공단 심사에서 치료비 인정 기간을 1년 남짓만 인정받았고, 숨진 뒤 빈소조차 없이 방치되었거나 유족 확인 없이 시신이 화장돼 택배 상자로 송환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산업 곳곳에서 필수 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이, 산업재해 뒤엔 치료와 보상은커녕 더 깊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죽음 이후의 대우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처참한 현실을 스트레이트가 생생하게 전한다.
19
1
18
645
개혁은 소리없이 상대가 모르게 수술 어쩌구하더니 약자 대상 논쟁은 마취도 없이 메스로 쑤심. 근데 수술 부위는 거기가 아니고.
133
3
166
3,535
[공문]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항의 이에 민주노총 직선5기 임원선거에 출마한 3개 후보조는 ❶ 10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결정된 방침에 대한 즉각 철회와 사과를 엄중히 요청하며, ❷ 혐오와 차별의 표현을 제외하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것을 촉구합니다.
1
16
9
667
尹乭石 retweeted
날 쌀쌀해져서 돼지등뼈 사다가 살만 싹 발라내서 순살 뼈해장국으로. 너무너무 맛있다.
4
16
701
尹乭石 retweeted
한나 아렌트가 나치의 사례를 가지고 고찰한 [악의 평범성]이 이거잖아. 존나 지 머리로 생각 안 하고 상부의 지시를 성실하게 수행할 때 존나 위험한 짓을 할 수 있다고. 근데 법원에서 존나 생각없이 상부 명령 충실하게 따른 건 죄가 없어~ 해버리면 누구나 생각없이 학살에 동참하게 되는 거지.
더 심각한 내용은 이거라는 생각 사전에 인지 못했고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군대를 헌법기관에 보내는게 그냥 '명령을 수행했다는 이유' 로 무죄가 된다면 앞으로 누가 이런 쿠테타 상황에서 "이건 아니다 우리부댄 안간다" 하겠음 어 쿠테타네? 일단 보내고 생각하자가 되겠지
1
1,162
16
1,324
33,728
尹乭石 retweeted
这篇文章记录了文革期间苗寨的一位尼姑老师,是我爸几年前心血来潮写的,未发表。我未作任何修改(包括错字标点等),今天贴在这里,留作家族口述史的一份材料: 《“师伯”与龙老师》(上) 我从我表哥那里知道了“师伯”这个称呼,以及认识“师伯”——她是个尼姑。 表哥不是我亲表哥,而是我外婆姐姐的孙子。外婆无儿,和姐姐同嫁在一个寨子,又是邻居,因此我们两家来往比较密切。自从记事那天起,我和表哥一见面,不管是他来我家还是我去他家,他都要打哦吼:“师伯的男人来了!”那时我大概五岁,表哥的身子大我六岁,说话大我六岁,想东西也大我六岁,就经常用“师伯”来调侃我。贵州松桃及湖南湘西一带的苗人(清朝皇帝叫做红苗)特别爱开玩笑,有时候也会花言巧语调侃异性。本来大家就整天吃糠咽菜,嘴巴里再里不嚼点甜话,日子咽不下去。 我打架干不赢他,只好把气和这个未曾谋面的师伯一起憋在心头。在我的脑海里,师伯肯定是个又丑又傻又邋遢的女人。 那时老家没有学校,更谈不上幼儿园,父亲就想把我送到外婆家去读书。我不想去读书,因为我讨厌表哥,更讨厌他挂在嘴边的师伯。但父亲知道识文断字的重要性,说烂了嘴皮,还是把我劝服了。他在旧社会的私塾读过《孟子》《中庸》,在新社会也曾经被人民政府作为少数民族干部重点培养,1956年还在铜仁合作干部学校培训过,方圆七八里都认识他这个烂秀才。父亲不仅晓得“三纲者,君臣义”的下一句是“父子亲,夫妇顺”,还能往墙上写很长的“中国共产党万岁”,每个字都比笸箩还大。但由于父亲是单传,爷爷奶奶总担心他在新政权里做错事:“人家是汉你是苗,找个借口砍你脑壳,接都接不回去!”于是一直观望着,观望着,观望到终于失去了吃皇粮的机会,只得跟其他村民一样,舞起锄头把来谋生。 “起床起床,上学去!” 我连滚带爬地吃完早饭,背着书包上学去了。那是一个父亲双手大的红色挎包,上面还印着黄色的“红宝书”的字眼,里面装有住在我家的“四清工作队”送给我的《毛主席语录》和《老三篇》。我、表哥和其他一些小伙伴扛着红缨枪,兴高采烈唱着“下定决心,不怕牺牲,排除万难,去争取胜利”,向着学校跑去。 我们要去的地方是个四周长满合抱大枫树的山巅,叫“枫树坳”。山下有七八个苗寨。距学校50米左右有一条通往湖南腊尔山的赶集大路和一口四季不枯的水井,水井左右边分别是一颗大大的金蛋子树和柏籽木。井口用一块重几百斤的青石板盖着,水井被分为三格,上格是饮用水,挡板的中间打有一个小缺口,用来放走溢水和接饮用水之用,中间一格是留给路人洗手洗脸专用,最后一格是用来洗脚。水温冬暧夏凉又位于交通要塞,光顾的人也自然不少,走下水的青石板台阶被过路的人们踩磨得锃光瓦亮,能照得出人影,特别是五黄六月的赶集天,来井水洗脚的小伙子,将脚踩得啪啪作响,把水溅在洗脸或洗脚姑娘身上,用来引起一阵阵善意的叫骂来与她们搭讪,或引发一阵水仗…… 走进学校我才发现,那里根本不是学校,是座比丘尼庵。教室很简陋,书桌是用粗糙木板搭成,板凳全是学生从自己家里抬去的,分三个班级,五十多个学生轮换在两个教室上课,一男一女两个老师,男老师姓龙,是个患有小儿麻痹症严重后遗症走路很吃力跛子,年龄三十多岁;女老四十多岁,是个比丘尼,剃光头、戴头帕,她自己也不知道姓啥名啥,当地习惯叫她师伯,因此大家叫她师老师。 师老师长得很靓丽,虽然四十多了,面如满月、脸似桃花,白里透红,她身体丰腴白皙,不胖不瘦,真的是那种弱骨丰肌的少妇。讲话下湖南(麻阳一带)口音,同时会讲流利的苗话。后来才听外婆说师老师的命运:五岁左右父母双亡,靠乞讨为生,因此她不知到自己姓啥名啥,自己的生辰八字,也不知道自己是哪里人。大概八九岁时候,有一家恶霸见她长得明清目秀就收做童养媳,嫁给一个比她大二十多岁的呆子。十二、十四、十六岁左右分别生三个小孩都先后夭折,由于丈夫是个呆子,她又没有父母保护,在家中没有人将她当做人看待,稍不顺意就对她拳脚相加、大打出手。到了十八岁左右,在忍无可忍的背景下她决定出家,削发为僧。 在旧社会有个约定俗成规定,一个人不管犯下多大的滔天大罪,罪恶累累,只要出家为僧,就不得再追究责任,师老师出家后,她全家也找到麻阳的尼姑庵,见她已经削发为僧,也拿没办法,但是为了减少不必要的麻烦,还是将她送到贵州的枫木坳尼姑庵。 经过寒冷的冬天,才懂得春天的温暖。师老师到枫木坳尼姑庵后,她虚心向老尼姑们学习。念经、采中药、写毛笔字样样精通,方圆几十里的哪户人家小孩生病、哪个老人跌打损伤,她都有求必应,同时还免费给村民写立当、立卖字据和秉贴等,受到当地的交口称赞。 (下文见转发) #二棒论古
我爸是老三,他前面两个都是大跃进期间饿死的。我们周边寨子当年饿死了挺多的人,但原po既然只说家人,我也没对此进行过走访调查,所以就选2个人吧。这事儿还在我老家留下个俗语叫“过粮食关”,没过关就死了。我爷爷以前说饿死的人是水肿的,皮肤绷得亮晶晶的,在路上拖着脚走啊走啊,一头栽倒在水田里就起不来了。 那时“瓜菜代”,一年到头也吃不上多少白米,用红薯、玉米、南瓜、饭豆(赤小豆)之类勉强充饥,山上的蕨根也被挖完了。我爸是我奶奶生养的几个孩子里第一个没被饿死的,他说以前洒了饭在地上,我爷爷都要很严厉地让他捡起来洗洗吃掉,说哪怕掉进粪坑里也要捡起来,否则浪费粮食雷公会劈死他的(雷公是东部苗族里最大的神)。至于菜,就是在火塘上架起三脚和鼎罐,煮点菜叶子和辣椒之类,熬得肚皮清水溜溜,但过年的时候会有点猪皮。 我爸小时候最喜欢丧事,因为打绕棺时会在棺材一头放粑粑,他可以去吃。我在这里引用一下我俩一起整理的一本苗族民间文学的书的后记,这段是他自己写的: “奶奶对我说,放在死者棺材头上那个粑粑叫灯盏粑,管坛师放好后,马上可以取来吃,吃了可以增加胆量和驱邪。在那粮食饥馑的年代别说是一个糍粑,就是一粒白米饭都是诱人的。我鼓足勇气,踩着凳子,一口气把放在棺材上的三个灯盏粑都装进了衣兜。那天晚上我拿着那三个粑粑回家,奶奶还特意给我炒了一个鸡蛋。回想起那糍粑的味道,真是胜过现在的汉堡包和所有大餐,使我终身难忘。” 可能你会说我爸咋这么low呢,拿汉堡包来对比?这是因为饥饿对他小时候造成了严重的心理创伤,我小时候他带我去贵阳玩,俩人第一次吃了肯德基,他就觉得这种炸物简直是人间至味了,以后就把肯德基当美食标杆了。事实上在我家生活好起来以后,他还是完全不能接受浪费食物,比如小时候我和我姐吃不完饭了,他都一定要把剩饭剩菜全部吃完,控制不住自己。这样导致他养子女后严重超重,现在两百斤出头。 这种“言传身教”对我也造成了代际影响,我一直默认食物就是必须吃完的,直到后来有了一位有钱的前女友,我才惊讶地发现原来“节约粮食”并不是普世价值,原来是可以俩人旅游一顿饭点好多菜尝一下不吃完的。我为此还跟她吵过,但后来又觉得是我爸不好,把这“穷病”传染给了我,对他很不满。不过后来疫情期间我释然了。那时我在北京,看到上海封城各种断粮的消息,又听到北京也要封的传言,就买了好多罐头干货之类,心想不管怎样,即使我不出门也能俩月不饿死。后来北京并没有封,但我也一段时间内留下了囤货的心态,生怕这用光了那买不着了。然后我想起我爸:他小时候是怎么过“粮食关”的呀!于是愧疚,后来带他去北京几家营养科挂号减肥。朋友们,你们想想我的爸爸没被饿死,活了下来,然后又养了我,我才能在这里跟你们吹牛打屁。我是多么幸运呀!他是英雄! 我不研究近代史,虽然看过一些谈到大饥荒的书,但众所周知作者们统计方法不同,死亡人数从几百万到几千万都有。我没有能力也无意讨论具体数字,仅在此提供家族的一点口述史,作为一个小小案例,以供后来者参考。 teapawt.org/wuerbangbang/status/20… #二棒论古
1
12
1
56
6,291
尹乭石 retweeted
현직 무당이 자신을 선거관리위원회 수사단장직으로 임명하는데 이것이 적법한 계통에 의한 명령인지 합법적인 임무인지 판단 못하는 금치산자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이지.
1
158
2
106
5,695
尹乭石 retweeted
35살입니다. 버리십시오... teapawt.org/milkcake_0902/status/2…
단뮤) 가정사 가정폭력 죽음 30대 이상 트친이 있다면 의견을 물어보고 싶어서 글 씁니다... 아빠가 암이라고 합니다. 이미 림프로 전이되어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상으로는 이제 5년 정도 남으셨다고 하는데, 저는 신체/정신적 폭력으로 연을 끊고 살고있었습니다.
1
376
15
3,680
224,501
尹乭石 retweeted
제 조언은 장례식도 가지 않는 것입니다. 장례식 가면 분명히 아버지가 선생님께 어떤 폭력을 휘둘렀는지 모르는 인간들이 이러쿵저러쿵 입방아 찧어댈겁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하나만큼은 꼭 지켜야합니다. 바로 선생님 자신입니다.
1
5
91
4,550